22살 영어 한마디 못 하던 워홀러, 호주 영주권을 받기까지

People walking along a dirt path through Australian bush, with the title From Working Holiday to PR in Australia

2013년 3월, 저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어요. 22살이었고, 외국에 나가 본 적도 없었고, 영어는 한마디도 못 했어요. 그리고 4~5년 뒤 영주권을 받았어요.

이 글은 비자 규정을 정리한 글이 아니에요. 규정은 다른 가이드에 정리해 두었어요. 이 글은 워홀에서 호주 영주권까지 제가 직접 겪은 이야기예요. 그때와 지금은 규정이 다르니, 한 사람의 경험으로 읽어 주시고 본인 상황은 꼭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세요.

한눈에 보는 제 여정

시기있었던 일
호주에 오기 전군 전역 후 거제도 조선소에서 전기 일을 하며 돈을 모음
2013년 3월22살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도착
약 6개월 뒤영주권을 받고 싶다고 결심
2014년쯤농장 일을 하러 번다버그로 이동
워홀 2년 뒤빵공장 스폰서로 바로 전환
도착 후 4~5년영주권 취득
그 뒤공장을 나와 TAFE에서 배관 과정을 듣고, 농장 컨트랙터 일 시작

왜 호주였나

20살에 군대에 가서 22살에 전역했어요. 사회에 나와 거제도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전기 일을 하며 돈을 모았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친구가 “같이 호주 가자”고 했고, 그렇게 워홀로 오게 됐어요. 거창한 계획은 없었어요.

첫 일주일: 컬처 쇼크

처음 살았던 곳은 시드니 스탠모어의 백패커스였는데, 정말 신세계였어요. 외국이 처음인데 샤워실이 남녀 공용인 거예요. 영어는 한마디도 못 하고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도 않아서, 첫 일주일은 그냥 관광만 했던 것 같아요.

일이란 일은 다 했어요

타일, 청소, 잔디 깎기, 접시 닦기까지 일이란 일은 다 했어요. 목표는 돈이었고, 그냥 열심히 일만 했어요.

그런데 주위에서 인정해 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학연, 지연, 혈연 없이 나만 열심히 하면 인정받는 호주가 좋았어요. 온 지 6개월쯤 됐을 때, 그 느낌 때문에 영주권을 받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어요.

다만 다시 돌아간다면 제 권리부터 알아볼 거예요. 그때는 현금 일을 하면서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첫 일을 시작하기 전에 꼭 호주 최저임금 가이드를 읽어 보세요.

영어는 펍에서 배웠어요

제 영어는 진짜 실전 영어였어요. 펍에 가면 어른들이 많이 계시니까, 맥주 한잔 사 드리면서 말했어요. “영어 공부하러 왔는데 외국인 친구가 없어요.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그러다 이야기꽃이 피었어요. 따로 공부도 했지만, 이렇게 하면서 영어가 정말 많이 늘었어요.

번다버그: 3개월의 기다림

2014년쯤 농장 일을 하러 번다버그에 갔는데 일을 구하지 못했어요. 3개월 정도 웨이팅만 했어요. 돈이 너무 없어서, 살던 곳에서 집안일을 도와주며 방값을 아꼈어요. 결국 토마토, 마늘 같은 일을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그때는 한인마트 같은 것도 아예 없었어요.

농장 일을 계획하고 있다면 농장 일과 88일 규정, 농장 시즌 가이드를 읽어 보세요. 타이밍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해요.

인생을 바꾼 빵공장

저를 스폰해 준 곳은 빵공장이었어요. 호주인 사장님이 일 열심히 한다고 저를 정말 예뻐해 주셨어요. 빵도 만들고, 포크리프트도 운전하고, 재고 관리도 했어요. 운이 좋아서 워홀 2년을 마치고 바로 스폰서로 넘어갔어요.

영주권까지 4~5년

총 4~5년 만에 영주권을 받았어요.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항상 사람 때문이었어요. 사람들이 힘들게 할 때 다 그만두고 싶었어요. 혹시 지금 그런 마음이라면 저도 그 마음 알아요. 저도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지금은 스폰서와 영주권 규정이 달라졌으니 제 일정을 계획으로 삼지 마세요. 현재 제도는 Skills in Demand 비자, 영주권 경로 가이드에 정리해 두었어요.

연봉 협상은 이렇게 했어요

쭉 설명했어요. 지금 상황과 제가 발전시킨 것들을 이야기하고, 얼마를 원하는지 말했어요. 예를 들어 20% 인상을 원한다고 말하고, 실제로는 15% 정도 올랐어요. 그래서 항상 먼저 크게 불러요. 저에게는 그게 더 유리했어요. 물론 회사마다 다를 수 있어요.

후회는 없어요

가장 후회되는 일은 없어요. 가장 잘한 일은 빵공장을 그만두고 나온 거예요. 아니었으면 평생 남 밑에서 주급 받으며 살았을 것 같아요.

빵공장을 나온 뒤에는 TAFE에 가서 배관공(plumber) 과정을 2년 정도 들었어요. 그러다 그만두고 농장 컨트랙터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돈도 안 되고 빚만 생겼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역시 버티는 놈이 이기더라고요.

제가 해 드리고 싶은 말

목표를 이루고 싶으면 그걸 이룬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세컨을 따고 싶으면 세컨을 딴 사람에게, 영주권을 받고 싶으면 영주권을 받은 사람에게요. 그게 정말 큰 도움이 돼요.

마무리

2013년에는 명확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이 사이트를 시작했어요. 완벽한 영어도, 완벽한 계획도 없이 시작해도 괜찮아요. 저도 둘 다 없었어요. 다만 현재 규정을 확인하고, 일터에서의 권리를 알고, 먼저 그 길을 간 사람에게 계속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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